<오이카게> 군손님

하이큐 2017. 6. 20. 17:38



 * 끄적끄적. 짧아욘 !







 야구방망이를 드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오이카와는 배구공 정돈 너끈히 삼키는 손으로 매끈한 나무 표면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꼴깍. 침이 절로 삼켰다. 식탁 뒤로 애처럼 숨어든 오이카와는 매섭게 치뜬 눈으로 찔끔찔끔 정면의 현관문을 응시했다.


 삑. 삑. 삑. 삑. 삐비빅. 저만큼 당당하면 두 허벅지로 힘들게 쪼그려 앉아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는 오이카와로선 아무래도 기가 빠진다. 새집에 넉넉히 쌓인 이삿짐을 자정이 되어서야 해치우고 소파에 누웠더니 별안간 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손길이 꽤 망설임도 자비도 없어서 오이카와는 벌떡 몸을 퉁겨 일어났다. 누구야 대체? 일 사정으로 이사한 오이카와의 론리하우스니 동거인은 있을 리 없었다. 짐작하길 집주인도 아니다. 친절하고 인성 좋은 분이었으니 이 밤에 예의 없이 저리 두드릴 리 없었다. 같은 이유로 부모님도 제외된다. 초미남이고 스타일 좋고 성격 괜찮고 23살 젊은 나이에 번듯한 직업을 가진 오이카와가 홀살림을 꾸린다는 말에 넌지시 추파를 흘리는 여성들이 덤프트럭으로 네댓 대는 되었지만, 부모님을 빼고 주소는커녕 이사하는 날짜조차 말한 적이 없으니 집들이 손님도 아니다. 그러니 오이카와의 집임을 알고 찾아왔을 리는 만무했다.


 처음엔 집을 착각했나 했다. 그러나 혼자 짐을 푸느라 녹초가 된 다리를 끌고 현관문으로 걸어가 오이카와를 보고 민망해하는 낯선 사람을 괜찮아요, 괜찮아하고 달래며 안녕히 가세요하고 손을 흔들어주는 번거로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시했더니 이 성가신 불청객은 손잡이를 무지하게 돌리며 성을 내기 시작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버튼음도 들렸다. 삑. 삑. 하고. 거기에서 오이카와는 거실 한구석에 놓인 방망이를 슬그머니 집어 들었다. 뭐야 뭐야 이거. 도둑 아냐?


 하지만 그 비극적인 추측에 비하면 불청객의 행동은 터무니없이 평화로웠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젠 비밀번호만 계속 누르기 시작했는데, 매번 틀려도 지친 기색이 없어 그 꾸준함이 기특할 정도였다. 그 갸륵함 탓인지 덕인지 오이카와는 신경을 풀고 불청객의 부름에 응하기로 했다. 허리를 들고 식탁을 빙글 돌아서 문으로 성큼 첫발을 떼었다. 그때야 오이카와는 깨달았다. 자신의 럭셔리한 집의 비밀번호가 꽤나 빈티지한 ‘1111’이었다는 것을.


 벌컥. 이었다 벌컥. 참으로 당당한 침입이 아닐 수 없다. 오이카와는 완연히 굳은 채 지금까지의 행보처럼 거리낌 없이 안으로 행차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른 어깨에 튼튼한 사내아이가 아니라면 무게를 감당 못했을 배낭 하나. 왼 어깨엔 어른이 사용하기엔 심상치 않은 빵빵한 책가방 두 개. 등에는 또래 평균보다 큰 키가 아니었다면 바닥에 닿았을 빅백팩. 흐트러진 머리카락처럼 새까만 가쿠란,


 을 걸친 생판 남인 소년을.


     “안녕하세요. 안에 계셨네요. 저 기억하시죠, 토오루 삼촌.”


 하고 꾸벅 허리를 숙이는 다시 보아도 생판 남인 소년을.


     “……”

     “저기, 삼촌?”

     “………”

     “토오루 삼촌?”


 소년의 뚱그런 머리가 모로 기울어졌다. 오이카와는 두 입술을 모아 뻐끔뻐끔하다가, 아악! 하고 의미 모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외려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뒷걸음질하며 소년이 꼼꼼히 문을 닫고 집으로 완벽하게 들어설 때까지 아무 말도 못했다. 소년이 지고 있던 것을-답답한 가쿠란 한 겹까지-전부 내려놓았을 때 그제야 오이카와는 식겁하며 말문을 텄다.


     “너 뭐, 뭐뭐, 뭐야!”

     “카게야마 토비오입니다.”

     “왜 남, 나, 남의 집에…”

     “갑작스럽게 죄송해요. 저 좀 돌봐주세요. 작년은 매일 보다시피 했는데 그만한 정은 있으시잖아요.”


 ……오이카와는 다섯 호흡 정도를 까먹었다가 단 한 번에 판도를 뒤엎었다.


     “난 너 몰라!”


 확실히 그 말이 크리티컬로 들어간 게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염치없이 태연자약하던 소년의 표정이,


     “…네?”


 한순간에 울상이 되어버렸으니.



***



 어쨌든 소년은 어렸으므로, 나이를 따지자면 거진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났으므로, 그리고 오이카와는 직업상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게 뇌두는 것이 참을 수 없었으므로 그는 정성스럽게 소년을 달랬다. 발개진 눈가로 간신히 눈물을 참아낸 소년이 히끅하고 어깨를 떨었다. 분명 이게 아닌데. 무단으로 침입하고도 소파를 차지한 이 요망한 소년을 쫓아내야 하는데. 오이카와는 소년이 훌쩍일 때마다 소파 아래로 무릎을 꿇고 울지 말자. 응?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요.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고개를 침울하게 수그린 소년이 무릎에 올린 두 손을 바르르 떨며 물었다.


     “진짜 토오루상 아니에요…?”

     “토오루상이 맞긴 맞아요. 근데 토비오쨩이 찾는 토오루상은 아닌 것 같아.”

     “저 몰라요? 저 카게야마 토비오인데…”

     “미안하지만, 토비오쨩. 삼촌이랑 친했다면 내가 삼촌이 아니라는 거 알 수 있지 않아?”


 오이카와는 최대한 소년의 눈물샘을 건드리지 않게 살금살금 말했다. 그 말에 소년은 발딱 고개를 젖혔다가, 가슴팍과 어깨 전체를 더욱 파들파들 떨었다.


     “…얼굴을 몰라요.”


 뭔 소리야. 그런 냉정한 말을 무섭게 떠는 소년의 정면에 대고 말할 수 없어 그대로 삼킨 오이카와는 소년의 다음 말에 입을 떡하고 벌렸다.


     “기억을 못 해요.”

     “사람의 얼굴을.”


 얼이 빠졌다는 게 이런 감각인가 싶었다. 오이카와는 애먼 입술만 찹찹 핥다가 머리를 헝클이며 허어, 하고 의미복잡하게 웃었다.


     “얼굴을 기억 못 한다는 건… 무슨…”


 그 말의 묘함은 당사자인 소년도 고개를 갸웃할 만큼이었다. 소년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가 어디서 인용한 듯 말을 능숙하게 쏟아내었다.


     “안면실인증이에요. 대부분 뇌졸중이나 두부 외상 탓에 후천적으로 생기지만 저는 유전이래요. 얼굴이라곤 했지만 사실 사람 하나 자체를 인식 못해요. 목소리도요.”


 그 뒤로 이어지는 소년의 이야기는 오이카와가 할 말을 전부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머니도 같은 증상이셨어요. 툭하면 아버지와 저를 잊으셨어요. 저도 부모님을 잊었구요. 고개만 잠깐 돌렸다가 바로 해도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버지인지, 낯선 아저씨인지 몰랐어요. 삼촌이나 아버지인줄 알고 따라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수십 번이 넘어요. 대부분은 착한 분이셔서 돌려보내주셨지만 그대로 납치당한 적도 세 번이나 있었어요. 특히 세 번째는 범인이 악질이어서 1년 동안 정신상담을 받아야했어요. 그쯤 되자 아버지는 시야에 제가 없을 때마다 불안해하셨어요. 지친 것 같기도 하셨어요. 언젠가부터 제가 ‘아버지에요?’라고 물을 때마다 화를 내셨어요. 그리고 자주 ‘나는 당신의 남편이 아닌 거 같고 네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당신에게 없는 사람인 거 아니니. 너에게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하셨어요.”

     “…….”

     “그래서 진짜 없어지셨어요. 집을 나가버리셨거든요. 사실 그전부터 집에 잘 들어오지 않으시긴 했어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냐는 의심도 들었는데 어머니나 저나 아버지가 애인과 팔짱을 끼고 대로를 다녀도 모르니 확인할 수도 없었어요. 어머니와의 생활은 힘들었어요. 서로 정이 없었거든요. 서로 기억을 못하는 처지니 모성애가 있을 리 없었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늘 집에 가보니 어머니가 집을 내놓고 없어지셨더라구요. 집주인이 딱한 얼굴로 챙겨놓은 짐을 주시길래 그거 전부 가지고 나왔어요. 삼촌의 집을 아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다른 분이 계실지는 정말 몰랐어요. 죄송해요.”


 두두두두 뱉던 말의 끝을 울먹임이었다. 변명이 통할지 몰라 어깨를 쪼그리고 얼굴을 푹 떨어뜨린 폼이, 생각보다 오이카와의 다정한 부분을 아프게 건드렸다. 오이카와는 쭉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건 매우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어린아이의 혼잡한 망상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머리가 비상한 쪽의 사람이었고 타인의 말에서 진실을 옭아내는 것을 꽤 잘했다. 그리고 소년의 말에서 오이카와가 찾은 것은,


     “힘들었겠구나, 토비오쨩.”

     “……”

     “무섭고 슬펐겠다. 많이 불안하고 아팠겠어.”


 그런 부류의 것들이었다. 순간 소년이 전신을 움찔했다. 오이카와가 소년의 손을 잡아 자신의 두 뺨을 쥐게 한 것이다. 그가 이끄는 대로 소년의 허리가 부드럽게 숙여져 이마가 찬찬히 마주쳤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서로의 얼굴이 눈꺼풀에 불투명하게 아롱졌다.


     “지금 닿아있는 난 ‘오이카와상’이라고 해요.”


 소년이 떨었다. 부딪힌 피부에 스미는 떨림이 두려울 정도로 애처로웠다. 오이카와는 소년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애틋해졌다. 어른이 아이에게 갖는 동정이나 연민일런지도 몰랐다. 그런 것도 사랑이라는 태그로 묶일 수 있으려나. 불완전하고 값싼 감정이려나. 그런 걸로 이런 값비싼 말을 내뱉어도 감당이나 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여하튼간에 오이카와는 성격이 괜찮은 사람이었다. 친절한 어른이었다. 그리고 직업상,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게 놔두는 것이 참을 수 없었으므로 오이카와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지낼래?”


 왜냐하면 그는 선생이었으므로.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야카게> 무제  (0) 2017.06.02
<쿠니카게> 무제  (0) 2017.05.24
<오이카게> 직장인x국대 AU  (1) 2017.04.15
<오이카게> 센티넬버스  (1) 2017.03.23
Posted by 새벽v

<미야카게> 무제

2017. 6. 2. 14:28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쿠니카게> 무제

2017. 5. 24. 14:1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수위글을 올려놓습니당! 수위 없는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놓습니다!
새벽v

달력

태그목록